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기된 흥미로운 질문이 있다. ITUC(국제노동조합연맹)가 발표하는 노동권 지수를 보면 한국이 상당히 낮은 순위에 있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는데, 더 충격적인 대목은 한국보다 훨씬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들이 오히려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가난한 나라가 더 잘 사는 나라보다 노동권 지수에서 앞설 수 있을까.
혼동하기 쉬운 부분이 여기서 시작된다. 노동권 지수는 '노동 문화'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임금, 복지, 근무 환경처럼 노동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삶의 질을 반영한 것도 아니다. 이 지표가 평가하는 것은 법적으로 노동자의 기본 권리—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파업권 같은—가 정부와 기업의 침해로부터 얼마나 보호되는지 하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 나라가 이 지수에서 높은 순위를 얻는다는 것은 '실제로 더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법적으로 노동자 권리를 침해하는 정도가 적은 나라'를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역설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경제가 작은 나라, 특히 개발도상국일수록 정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형 자국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처럼 대형 재벌이 국가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와는 구도가 다르다. 빈국에서는 소수 재벌이 정치권과 밀착해 정책을 좌우할 만한 정치 구조가 형성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의 정치 구도는 어떻게 될까. 자국 기업 로비의 영향력이 약한 대신,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층이 정치적 주체로 부상한다. 투표권, 집회 조직력, 거리 시위 같은 수단으로 정부에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구가 대다수라는 의미다. 한국에서 대기업이 정부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이런 나라에서는 노동자 집단의 목소리가 그 정도의 무게를 가진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가 섞인다. 개발도상국의 주요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상당수 다국적 기업이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외국 자본, 외국 기술, 외국 경영진이 주도하는 사업장들이 그 나라 고용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경우 정부는 난처한 선택에 직면한다. 자국 노동자의 노조 활동을 강경하게 진압하고 다국적 기업을 편들면, 국내 정치적 비용이 급증한다. 정부가 자국민인 노동자를 억압하면서까지 외국 자본을 보호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쉽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도 속에서 그것은 '국가 이익을 팔아넘기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일수록 정부가 노동자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다. 기업 편을 드는 순간 '매국' 프레임이 작동하고, 그것이 정권 유지에 직접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조를 이해하면, ITUC 노동권 지수의 순위를 읽는 각도가 달라진다. 높은 순위가 반드시 그 나라 노동자의 삶이 더 풍요롭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순위가 낮은 나라(한국 포함)에서는 기업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하고, 이와 함께 노동자의 법적 권리 침해가 더 활발한 경향을 보인다. 지표의 정체를 아는 것이 통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길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노동권 지수는 노동 문화가 아니라 법적으로 노동자 권리가 지켜지냐를 따진다. 가난한 국가 일수록 국가에 영향을 줄 만한 기업이 거의 없다.
원본 출처: 루리웹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