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주버님이 갑자기 조카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십 년 가까이 한 번도 생일이나 설날 봉투가 없었던 사람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후로는 달라졌다는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한 글쓴이의 사연을 보면, 이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글쓴이의 가정에서는 먼저 결혼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시아주버님은 아직 사회 초년생이었다. 조카의 출산과 돌잔치 때도 특별한 축의금이 없었지만, 그땐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갔다. 일이 바빴거나 형편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고 이해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후 십 년이 지났다.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설날. 명절마다 반복되는 풍경이었다. 손 주는 일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형제들이 챙겨주는 금액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시어머니가 직접 돈을 넣은 봉투를 마치 아주버님이 준 것처럼 연기하곤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십 년간 겨우 그 정도 진심이 전해졌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거리감만 쌓여갔다. 집에 놀러 가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인사조차 제대로 없었다. 조카도 그 분위기를 감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큰아빠'라는 관계가 실제로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글쓴이의 남편도 아이를 많이 챙기지 않는 형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아주버님이 결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곧 돌잔치를 앞두고 있다. 이제 상황이 뒤바뀌었다.
결혼 후 달라진 모습이 극명하다. 조카 앞에서 친하게 대하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아내 앞에서 좋은 상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글쓴이의 느낌인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조카의 생일을 챙기고 돈을 보낸다. 이제야 효도를 하는 척한다는 뜻인데, 평소에는 부모님께도 잘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그 모든 게 얼마나 오래 갈지도 의문이라는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상황에서 글쓴이와 남편은 어떻게 해야 할까. 둘 다 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다. 십 년간 무신경했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과거를 고스란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주지 않기'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정당해 보이든, 그것이 가져올 현실적 후폭풍이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상대가 챙기지 않았으니 나도 챙기지 않는다는 선택은 시가 관계라는 복잡한 구조 속에서 쉽게 '당신들이 날 무시한 것으로 전해진다'는 확인으로 변할 수 있다. 시어머니, 남편, 형제들 사이의 관계가 얼팍해질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얼마를 줄 것인가'가 아니라 '왜 주는가'의 명분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번에 선물을 준다면, 그건 상대의 과거 행동을 용서한다는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당신과 달리 기본적인 예의를 지킨다는 것, 내가 그런 '똑같은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는 신념을 보여주는 행동이 될 수 있다. 그 명분이 서면, 금액 자체는 부차적일 수 있다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많은 시댁 관계 갈등은 결국 '상호성의 부재'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주고 누군가는 받기만 하려 한다. 그 불균형이 십 년 동안 쌓여 온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앞으로의 관계 기조를 결정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 원문 발췌
그 후로도 10년동안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설날 챙겨준게 없음. 솔직히 안 주고 싶은데 똑같은 인간은 되기 싶고 평소 잘 했다면 100, 200도 아깝지 않지만 진짜 주기 싫음.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