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가 공유한 관찰이 눈에 띈다. 결혼 전에 낙태를 경험한 지인들의 현재 모습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고 예쁜 자녀를 낳았으며 지금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이 관찰 속에는, 사실 오래도록 이 사회에서 돌아온 낙태에 관한 거대한 도덕 서사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이 담겨 있다.

낙태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들어온 이야기들을 생각해보자. "낙태는 죄다", "죽은 아이가 엄마한테 붙어다닌다", "인과응보", "저주" 같은 표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말들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누가 반복해왔는지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순한 윤리적 경고가 아닌 측면이 있다는 점으로 보인다. 종교적·보수적 가치관과 여성의 신체 자율성 사이의 깊은 긴장 속에서, 선택 자체를 부정하고 죄책감을 강화하는 기제로 오래도록 작동해온 문화적 언어들이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런 미신과 금기가 대대로 전승되는 방식을 보면, 그것이 실제로 효과를 거두려면 '증거'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낙태를 한 사람들이 실제로 불행해하는 모습, 병에 걸리거나 관계가 깨지거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일들이 보여져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 글쓴이의 관찰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직접 지켜본 바로는, 그 같은 비극적 결말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들은 시간이 지난 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결혼 후에는 자녀도 낳고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한 가지 해석은, 그동안 우리가 믿어온 이야기들이 실제 삶의 복잡성을 단순하게 도덕화한 측면이 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삶은 한 번의 선택으로 영구히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결정을 지나서도 다시 살아갈 수 있다. 관계는 변하고, 감정은 흐르고, 새로운 만남이 일어나고, 시간이 경과한다. 이 모든 것 속에서 과거의 한 선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예상과 다를 수 있다.

"낙태 진짜 아무것도 아닌듯"이라는 글쓴이의 표현이 당초에는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의도하는 바를 따라가보면, 그것은 '인생 전체를 압도하는 파멸적 사건이 아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즉, 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의 불행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관찰이며, 더 나아가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지나 미래를 다시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진술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같은 경험적 관찰이 가지는 무게감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낙태의 옳고 그름에 대해 철학적으로 논쟁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직접 지켜본 실제 삶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삶들이 미신이나 저주가 아닌 평범한 일상의 연속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것이 오래된 도덕 서사에 대한 조용하지만 강력한 반박으로 읽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눈으로 본 현실 속에서 비롯된 목소리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낙태는 죄다,낙태하면 죽은아이가 엄마한테 붙어다닌다 이런말 알고보면 다 거짓말임. 그런거 진심으로 1도 없음. 다 잘만 살더라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