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유죄를 할 수 없지 않나?"
이런 질문이 최근 몇 년 온라인에서 자주 나온다. 특히 성범죄 판결이 나올 때마다 피해자의 증언이 주요 증거가 되는 경우에 대한 의문이 쏟아진다. 마치 최근에 갑자기 도입된 기준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떨까?
대법원은 1986년 2월 강간치상 사건 판결에서 명확한 입장을 드러냈다. 피해자의 증언이 유일한 직접증거라 할지라도, 그 내용이 합리적이고 일관성이 있다면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미 40년 전부터 법원은 물증이나 목격자가 반드시 있어야만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기본 원칙을 제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 근본적인 법리는 1994년에 세워졌다. 강도살인 사건 판례에서 대법원은 "범죄 사실의 증명이 반드시 물증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논리와 경험칙에 맞는 간접증거로도 충분하다"고 명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원칙은 지금도 거의 모든 성범죄 판결문의 첫 문단에 그대로 인용된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성범죄에만 적용되는 특수한 규칙이 아니라는 것으로 보인다. 형사 전체에 걸친 기본 법리다. 강도살인처럼 다른 범죄의 판례가 성범죄에 인용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2006년 판례는 "피해자 진술의 주요 부분이 일관되고, 경험칙상 비합리적이거나 자체 모순이 없으며, 거짓으로 진술할 동기가 드러나지 않는 한, 특별한 이유 없이 신빙성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이후로도 성범죄 판결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기준이 되었다.
2008년 판례는 진술의 세부사항 문제를 다뤘다. 피해자나 증인이 주요 사건의 흐름에서는 일관성 있게 증언하더라도, 시간이나 날짜 같은 사소한 부분에서 기억의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식으로 성범죄 사건은 점차 피해자 중심의 증거 평가 체계로 옮겨갔다.
2018년부터는 다른 차원의 변화가 나타났다.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성범죄 사건 심리에 도입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성범죄를 신고하고 법정에서 증언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큰 2차 피해에 노출될 수 있는지, 그리고 각 피해자의 처한 특별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 판례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피해자가 보이는 반응이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만으로 신빙성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2년 대법원 판례는 최근의 흐름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직접증거인 경우, 피고인의 진술이 경험칙상 합리성이 없고 자체로 모순된다는 점 자체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고, 나아가 간접정황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 같다.
결국 성범죄 판결에서 피해자 진술의 비중이 커진 것은 최근의 정책 변화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대법원이 형사법의 기본 원칙들을 다듬어온 결과로 보인다. 단기간에 이러한 흐름을 크게 바꾸기는 어려워 보이는 이유가 그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피해자의 증언·진술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유일한 직접증거'인 경우라도, 그 내용이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는다면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 범죄사실의 증명이 반드시 직접증거만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고, 논리와 경험칙에 합치하는 한 간접증거로도 가능하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