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의 영화들을 보면 시간 구조가 복잡해서 감정이입이 어렵지 않을까 싶을 것 같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시간 순서가 얼마나 뒤죽박죽이든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건 주인공이 화면에 얼마나 나오는가 하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놀란의 연출 특징을 먼저 정리해보자. 데뷔작 메멘토에서 기억의 순서를 역행시키기 시작했고, 이 문법은 인셉션, 덩케르크, 인터스텔라, 오펜하이머, 오디세이까지 계속 이어진다. 분리된 시공간이 클라이막스에서 수렴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놀란의 일관된 연출 문법인데, 흥미롭게도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은 영화마다 다르다.
덩케르크를 예로 들면, 영국에서 출발한 비행기, 며칠 전부터 항해 중인 보트, 해변에서 밤새 고생하는 병사들이 각각 다른 시간대와 공간에서 번갈아 나타난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들이 같은 장면에서 만나면서 결말로 넘어간다. 시간적으로는 뒤죽박죽이지만 그 결말은 감동적이어야 하는 장면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 관객에게는 왜 감흥이 약했을까. 흔히 역사적 거리감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이유는 다르다.
한국인 관객들은 먼 뉴욕의 스파이더맨, 수백 년 전 역사 속 인물, 외계인까지 상관없이 감정을 옮긴다. 영화에 몰입할 조건은 시간이나 시대가 아니라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덩케르크처럼 여러 인물이 동시에 부각되는 구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캐릭터에 감정을 집중시키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스토리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 해도 힘든데, 누구에게 감정이입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으면 극장을 나올 때까지 산만함이 남는다.
인터스텔라가 같은 수준의 시간 복잡도를 훨씬 더 쉽게 소화하는 이유를 보자. 영화 화면 대부분을 주인공 아버지가 차지한다. 화면 비중만 따져보면 아버지가 95%, 아버지와 딸이 함께하는 장면이 4%, 딸만 나오는 부분이 1% 정도다. 아버지는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가고, 시간까지 딸과 다르게 흐르지만, 관객의 눈과 감정은 한 인물을 따라간다. 그 결과 시간이 뒤섞여 있어도 몰입이 깨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디세이는 이 두 극단을 절충한 형태다. 아들이 먼저 화면에 등장하고, 그 이후 오디세이는 같은 시점에서 다른 공간에 있으면서 과거의 일들을 회상한다. 영화의 대부분은 오디세이가 없는 상태인데, 아들과 다른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그의 이미지가 간접적으로 쌓인다. 모험 이야기, 트로이 목마 전략, 그를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 같은 것들이 모두 그의 부재를 채워간다. 중반부에 오디세이가 직접 나타나면, 앞서 쌓은 간접 인상과 실제 모습이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사례를 보면 패턴이 드러나는 것 같다. 복잡한 시간 구조 자체는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에게 감정을 집중할 수 있는가가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화면에 많이 등장할수록, 혹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그 인물에 대한 이미지가 축적될수록 관객의 몰입이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오디세이를 감상할 계획이라면, 영화 초반부터 '왜 오디세이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의식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자,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라는 인상을 먼저 그린 후, 중반 이후 직접 만난 그의 모습과의 간극을 느껴보는 식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결국 관객의 몫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영화에서 아버지가 나오는 비중이 95%, 아버지와 딸이 함께하는 시간 4%, 딸이 나오는 장면 1% 정도거든요. 관객이 아버지에 감정이입할 시간이 충분하고, 시간의 흐름도 편하게 흘러주니 영화 전체가 보기에 편합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