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건물에서 다른 층에 사는 것을 택한 커플들이 증가하고 있다. 완전한 동거의 부담은 피하면서도 자주 만나고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인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반동거'라 불리는 이 방식은 한때 낭만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골칫거리가 생긴다.

한 익명 게시판의 글쓴이도 이런 반동거 중 하나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구조가 좋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집 모두 유지하면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한곳에서 함께 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생활이 길어질수록 묘한 불균형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제는 '두 집의 관리비'다.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았지만,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한쪽이 더 많이 들 리 없는데도 자동으로 계산하게 되는 심리가 생긴다. 그 다음은 요리와 식재료비다. 요리는 글쓴이가 거의 다 챙기는데, 정작 먹거리는 둘이 반반씩 낸다는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드러나는 구조적 문제가 바로 '노동 비용의 불가시성'인 것으로 보인다. 요리는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일인데, 반반 분담 범위에 식재료 비용만 포함되니 정산 밖에 남는 노동량이 생긴다. 음식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노동이 돈으로 환산되지 않으면서, 마음 한구석에 불쾌감이 맺힌다.

교통비와 데이트 비용도 마찬가지다. 애인이 자주 운전하니 애인의 부담이 크다고 생각했던 글쓴이는, 다시 계산해보니 자신도 기름값과 주차비를 여러 번 낸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상쇄가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가 모호해진다.

여기가 반동거의 함정이라 할 수 있다. 완전한 동거였다면 이 모든 비용이 '우리 돈'으로 통합되어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될 텐데. 혼자 산다면 자기 것만 챙기면 된다. 하지만 반동거는 그 중간에 걸려 있다. 두 집이 있으니까 비용도 두 배로 발생하고, 생활은 공유하니까 정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산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니 자꾸 다시 계산하게 된다.

결국 이 상황에서 생기는 피로감은 금액의 크기보다는 '딱 떨어지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요리 노동을 돈으로 책정할 수 없고, 교통비가 정확히 어디까지 공평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기준 없는 정산은 계속 의심을 낳는다. '이번엔 내가 좀 더 낸 건 아닐까' 같은 생각이 자동으로 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커플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비용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쌍도 있고, 나름의 정산 방식으로 만족하는 커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글쓴이처럼 자꾸 계산이 돌아가는 성향이라면, 처음부터 기준을 명확히 정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조언이 나온다. 요리 노동을 어떻게 환산할 건지, 교통비는 어느 정도까지 공평하다고 볼 건지 미리 정하면 나중에 더 편할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반동거는 자유로움과 책임 사이의 타협안처럼 보인다. 다만 그 타협이 만드는 불편함, 특히 비용 계산의 모호함은 많은 커플에게 공통적인 고민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 원문 발췌

같은 건물 다른 층에 살고 있어! 동거는 너무 부담스럽고, 같이는 살고 싶어서 근데 내가 애인 집 관리비랑 우리집 관리비를 비교하고 있더라고... 그리고 요리를 내가 다 해..! 근데 식재료는 반반 부담해..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