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5세라고 밝히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쓴이가 자신의 인생 절반을 차지했던 시간을 꺼냈다. 특별한 사건을 알리기보다는 "요즘 판들이 뒤숭숭해서 쉬고 가는 분위기 한번 만들려고" 했다는 설명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풀어낸 이야기는 한국의 70~80년대를 산 세대의 일상이 교과서와 얼마나 달랐는지를 드러낸다.
글쓴이가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교련 시간이었다. 목총이나 M1 소총을 들고 준전시 교육을 받던 학교의 풍경. 하교길에 5시마다 온 동네에서 울려 나오는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면 거리에 서 있는 학생들의 모습. 이런 환경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그 시대 누구나 거쳐야 했던 일상이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1979년, 고3이던 화자가 교실에 도착했을 때 벌어진 장면도 생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학생들이 한 정치 지도자의 서거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반대 의견을 내세운 화자는 그 학생들과 빗자루를 들고 싸우게 되었다는 것. 그 해 같은 시기에 벌어진 항쟁으로 화자는 고등학교 3학년 나이에 거리에서 가방을 들고 다니며 현장을 경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학 입시 때는 여러 명문대 합격장을 받을 수 있었으나 형편상 지방 국립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 결정 직전, 화자가 읽은 도서가 '불온서적'으로 분류되던 시절이었다. 대학에서의 서클 모임은 자연스럽게 '언더서클'(비공식 지하 학생운동 조직)로의 진입으로 이어졌다. 이 부분에서 글쓴이는 중요한 관찰을 남겼다. "지가 잘나서 나온 게 아니고 소위 조직에서 올려내세운 애들"이라는 표현—즉, 학생운동의 주체가 개인의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 조직적 필요에 의해 선택되고 배치된 인물들이었다는 지적인 셈인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 초반의 대학은 화자의 표현으로 "상상과 180도 다른" 환경이었다는 것. 1984년, 한 국가권력이 내건 '대학자율화'라는 미명 아래 시작된 것은 학도호국단 같은 어용조직에 맞서는 총학생회 직선제 투쟁이었다. 동시에 80년 광주항쟁의 진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대자보 투쟁이 전개되던 시기. 당시 캠퍼스 안에는 백골단(사복 경찰 조직)이 수백 명 단위로 상주했으며, 어떤 집회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한다.
화자는 이 과정에서 '언더'에서 '오픈'으로 올라와 많은 학생 대중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당시 감옥에서 출소한 한 인물을 직접 업고 집회장소로 이동한 경험도 언급했는데, 이는 운동권의 상징적 인물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의미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시기 전국의 많은 학생이 죽어갔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고문치사 사건이나 최루탄 피해자들 외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이 정권 타도를 위해 희생했다는 것—이 대목은 공식 기억과 현장의 간극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1985년 초, 화자의 인생은 급변한다. 밤늦게 후배들과 막걸리를 마시다가 정보 기관에 체포된 것. 당시 화자는 입영 신검을 거부한 수배 대상이었다. 결과는 훈련소로의 직행이었다고 회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 상황과 조직적 배치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무게감이 이 회고담 속에 짙게 배어있다.
📌 원문 발췌
지가 잘나서 나온게 아니고 소위 조직에서 올려내세운 애들이란거죠. 당시 난 언더에서 오픈으로 올라와 많은 학생대중 이끄는데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