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1년차, 시댁이 이렇게까지 좋을 수 있을까.
초반에는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시아버지는 평소 말이 없지만 스윗했고, 용돈도 자주 챙겨줬다. 시어머니도 친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형적인 '좋은 시댁'의 모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불편함이 생기는 게 일반적인데, 이 글쓴이는 결혼 1년이 지나도록 큰 마찰이 없었다. 정말 운이 좋은 걸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완벽함 아래 다른 층위의 질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시아버지는 형제 3명 중 맏형인 것으로 보인다. 세 형제는 모두 같은 동네 살고 거의 매달 만난다. 문제는 막내 형제의 딸이었다. 현재 초등 5학년인 그 조카는 어릴수록 사랑받아야 하는 법이지만, 시댁 내에서의 대접이 특별한 것으로 전해진다.
밥상 앞에서 조카는 항상 시아버지 옆 상석을 차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버이날이 오면 조카가 만든 카네이션은 아버지에게만 전달됐다. 어머니를 위한 건 없었다.
조카가 시아버지에게 자꾸 안기면 거기에 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마치 그것이 정해진 순서인 듯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다른 것이었다. 시아버지는 작은 공장을 운영 중인데, 조카를 데려가 공장을 구경시키곤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럴 때마다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이것도 언젠가 물려줄 꺼야." 초등학생 손녀에게, 벌써부터 상속의 전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남편은 어땠을까. 글쓴이가 물어보자, 남편은 이렇게 대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 회사 근처에 가본 적도 거의 없다고. 맏형 아들과 막내 형제 딸 사이에는, 나이만큼이나 심한 보살핌의 격차가 벌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의로 가득 찬 할아버지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린 조카를 특별히 챙기는 것, 그게 할아버지의 당연한 애정 표현이라고 자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다 그날이 왔다.
과일을 깎으면서 글쓴이는 조카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반말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야, 사과 먹어." 너무나 평범한 순간이었고, 너무나 일상적인 인사였다.
그 순간 시댁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할머니와 시아버지가 거의 동시에 반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감히 이름을 부르고 반말하냐고." 평소의 스윗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처음으로 시아버지의 분노 어린 목소리를 들었다.
혼란스러웠다. 아이 이름을 부르면 안 된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분노할 줄은. 더군다나 조카는 초등학생이고, 글쓴이는 어른의 입장에서 반말을 쓴 것뿐이었다.
그 분노 속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용돈을 주고 스윗해 보였던 그 모습 뒤에, 명확한 위계와 소속의 경계가 있었던 건 아닐까.
내 식구와 바깥 식구를 나누는 어떤 보이지 않는 라인이. 조카에게 쏟아지는 애정 표현들처럼 보이던 것들이, 사실은 '내 혈통'에 대한 집착이었던 건 아닐까.
글쓴이는 지금도 혼란 속에 있다. 평소에는 정말 좋은 분이셨는데, 한 마디의 분노 속에 다른 세계가 드러났다. '좋은 시댁'이라는 프레임이, 오히려 이상한 점을 말로 꺼내기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닐까.
좋은 사람이니까 이건 내가 참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자문 속에서, 막내 형제 딸이 받는 특별함과 남편이 받지 못한 관심 사이의 낙차는 계속 존재할 것 같다.
📌 원문 발췌
과일깎다가 시누이한테 '***야 사과먹어' 이랬는데 할머님 아버님이 '감히 이름부르고 반말하냐'고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