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순소득을 벌었다. 그런데 엔화 가치는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작년 한 해 일본은 해외의 공장, 주식, 채권에서 41조 5903억엔(약 378조원)을 벌어들였다. 실로 막대한 규모다. 그런데 21일 환율은 달러당 163엔을 넘어 약 40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돈을 많이 버는 나라의 통화가 약해진다는 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다.
국제수지 흑자가 통화를 받친다는 원칙은 경제학의 기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원칙이 작동하려면 해외에서 번 돈이 본국 통화로 실제 환전되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 자동차회사의 미국 법인이 1억 달러를 벌었다고 하자. 이 돈을 일본 본사로 송금해 직원 급여와 세금을 내려면, 달러를 팔아야 하고 엔화를 사야 한다. 외환시장에 엔화를 사려는 주문이 쏟아진다. 이 환전이 일어나야 통화 수요가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 법인이 벌어들인 돈이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곳의 공장을 확장하고, 현지 직원에게 현지 통화로 급여를 주고, 새로운 투자에 쓰인다. 이 과정에서 환전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외 기업 인수와 자원·금융 투자가 늘면서, 번 돈을 해외에서 다시 굴릴 곳이 많아진 탓인 것으로 보인다.
흑자의 규모는 커도, 그 흑자가 본국 통화로 바뀌는 규모는 작아진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함정인 것으로 보인다. 국제수지가 흑자라는 것이 곧 통화 가치가 오른다는 뜻은 아니라는 의미기도 하다.
지난 5월의 경상수지를 보면 이 구조가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난다. 경상수지 흑자 3조 9683억엔 중 107.7%가 해외 공장과 외국 주식·채권에서 나온 배당금과 이자였다. 상품 판매와 서비스 거래는 사실상 34억엔 적자였다. 돈은 벌고 있지만, 그 돈의 출처가 상품과 서비스가 아니라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외환 전문가들은 통화 가치를 결정하는 건 흑자의 규모가 아니라 흑자가 본국 통화로 실제 환전되는 흐름이라고 진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은 흑자라도 모두 환전되면 통화는 강해진다. 반대로 거대한 흑자라도 해외에 머물면 통화는 받쳐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를 '소득의 귀환율'이라고 부른다면, 일본의 귀환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해외 자회사에서 나온 소득은 26조 585억엔이었다. 이 중 11조 3425억엔(43.5%)만 일본으로 들어왔다. 절반을 못 미친다. 나머지 56.5%는 현지에 남아 있다가 또 다른 투자에 쓰인다.
장부상 흑자와 실제 통화 수요 사이의 단절이 벌어지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중동발 유가 인상과 재정 확대 우려까지 겹치면서 엔화 약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구조는 일본 기업이 국제화되면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라는 관찰도 제기된다. 과거에는 일본 공장에서 만든 상품을 수출하고 받은 달러를 본국으로 가져와 환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현지에서 만들고, 현지에서 팔고, 현지에서 쓴다. 많이 벌수록 통화가 강해진다는 오래된 경제학 공식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는 평가도 이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