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가 특정 정치 논객의 방송 시청을 중단했다는 경험담을 나눴다. 시청을 그만두기 전까지 그 방송은 자신의 정치관과 세상을 보는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를 자신의 말로 표현하면 "가스라이팅이 풀렸다"는 것이었다.
이 표현은 단순한 TV 시청 습관의 변화를 넘어선 의미를 담고 있다. 반복되는 방송 노출이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왜곡된 방식으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그 영향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상징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 정보 습득이 아니라, 감정 상태와 인지 프레임이 일관되게 조율되어온 경험을 의미한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시청을 중단한 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정치적 반대편에 대한 감정의 변화였다. 방송을 계속할 당시에는 상대 진영을 향한 증오심과 적대감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시청을 그만두자 이러한 감정들이 점진적으로 완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변화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정 정치 진영을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도 탁월한 인격과 진정성을 가진 이들이 많으며, 반대쪽 진영도 마찬가지라는 깨달음이 생겼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치적 선택이 그 사람의 인간됨 전체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청 중단 이후, 그는 정치 문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거리감 속에서 상대방을 다르게 정의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단순한 정치적 대척점이 아니라, 같은 사회의 시민으로, 더 나아가 일상을 함께하는 이웃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치 문제를 인간관계의 차원에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그는 방송을 계속 시청했을 때의 심리 상태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복적인 비판 노출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치 현실 전체가 모순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모든 제도가 부패했다는 감각이 계속 강화되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개혁이 절실하다는 절박감도 함께 증폭되는 경험이었다. 이런 감정 상태는 방송을 보는 매 순간 강화되는 악순환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것이 실제 사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기보다는 일관된 감정 자극의 반복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면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 논객이 설령 사회 문제를 지적하더라도, 그 방식이 시청자의 감정을 특정 방향으로 계속 몰아가는 구조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구조에서 반복 노출은 비판적 사고를 촉구하기보다, 감정적 확신을 점점 강화해 가는 경향이 있다. 즉, 정보 습득이라는 명목 아래 감정 반응의 훈련이 일어나고 있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이 사용자는 마지막으로 더 넓은 맥락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제도나 시스템이 아무리 모순처럼 느껴져도, 각각은 나름의 형성 과정과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관점인 것으로 보인다.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과 선택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는 의미다. 이런 인식은 정치를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복잡한 이해관계와 타협의 복합체로 바라보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경험담이 제시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내가 정기적으로 소비하는 정치 논평이나 뉴스 콘텐츠는 정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주는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특정 감정 상태를 반복해서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자신도 모르게 특정한 프레임에 묶여 있다면, 잠시 거리를 두고 다시 바라보는 것이 무엇을 달라지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상대진영에 대한 증오심이 사그라 들었습니다. 우리 다 그냥 사람이잖아요. 정치에서 한발자국 물러나서 지켜보면.. 우리는 다 동지이고, 시민이고, 이웃사람입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