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3일 봉하. 글쓴이는 그곳에서 7일간을 밤낮 없이 자동차 주차장에서 노숙한 것으로 전해진다. 날마다 밤낮으로 울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사자 증언이 담긴 한 편의 온라인 게시글은 현장에 있던 자의 무게 있는 목소리로 시작한다.
그 글에 따르면 24일, 분향을 마친 한 인물이 주차장을 찾아왔다. 글쓴이는 그의 '붉게 젖은 눈'을 오늘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적었다. 봉하 현장에서 목격한 구체적인 감정의 흔적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7일간 노숙하며 견뎌낸 사람만이 기억할 수 있는, 세부의 무게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은 그 인물이 당시 봉하에 올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쫓겨났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상주를 했기 때문에 현장을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지점에서 글쓴이가 제기하는 의문을 보면, 당시 분향소의 상주는 한 사람이 맡은 역할이 아니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한 시간, 두 시간씩 교대로 맡아 나갔다. 글쓴이 자신도 상주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상주했으므로 그때 벌어진 일을 가장 잘 안다'는 주장에서,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가. 상주가 여럿이었는데, 한 사람의 부분적 경험만으로 전체 현장을 정의하고 타인의 기억을 반박할 수 있는가.
상주 구조의 '공식성'에 대해서도 짚을 지점이 있다. 현장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교대하며 맡은 상주는, 특정 누군가의 사적 경험보다는 집단의 공동 기억에 더 가깝다. 그 기억 속에서 글쓴이가 본 것과 들은 것, 느낀 것들은 개별 증언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도 한 개인의 상주 경험을 근거로 그 모든 기억을 덮으려 한다면, 그것은 다수의 체험을 단 하나의 해석으로 박제하려는 행위가 아닌가.
글쓴이는 자신의 증언도 명확히 제한한다. '내가 본 기억이 없다'고만 말한다. 기억의 부재를 사실 자체의 부재로 치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역설적 질문을 던진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니 그 사실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만약 그렇다면, 반대로 한 개인의 상주 경험과 그것의 일부만으로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반문이 된다.
글쓴이가 핵심으로 지적하는 것은 '쫓겨났다'는 표현이 가진 성격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의도 없이 생겨나는 표현이 아니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 표현이 사실 확인 없이 쓰일 경우, 그것은 고인과 한 개인의 관계까지 영구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 특정 정치 맥락 속에서 증거 없이 누군가를 '쫓겨났다'고 표현하는 것은 역사를 일방적으로 다시 쓰는 효과를 낳는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글의 마무리는 한때 지지자였던 사람의 최후 호소처럼 읽힌다. 더 이상 동지 언어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질문이 되어 있다. 당신이 진정 사람이라면, 한때 함께했던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길 바란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그런데 ***은 ***가 그때 봉하에 오지 못했다고 한다. 고인과 등져서 분향도 못하고 쫓겨났다고 한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