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논평가의 저주'라고 할까. 타인의 정치 정세를 분석할 땐 발언이 정확하기로 유명하지만, 정작 자신이 정치 판에 직접 뛰어들면 번번이 실패한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는 국회의원 초선 시절부터 기존 정파와 결을 달리하는 '이단아'로 불렸던 인물로, 그간의 행보를 보면 이 간극이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평가가 있다. 분석가로서의 명성과 정치인으로서의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경력의 궤적을 따라가면 실패의 패턴이 점점 선명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초선 때부터 기존 ***당의 기조에 거부감을 느껴 나온 이후, 새로운 정치 판을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으로 ***당을 창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공의 가능성도 있었지만, 결국 그것도 폭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당, ***당 등 새로운 정치 세력 구성의 시도가 이어졌지만, 모두 같은 결말로 귀결된 것으로 전해진다. 해마다 다른 이름의 정당을 만들고 또 해산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으로 전해지는 와중에도, 당사자가 이 실패의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는 불명확해 보인다.
외부에서 평가하는 정세분석 능력과 당사자로서 주도한 정치 활동 사이의 괴리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한 팬이 남긴 관찰이 정곡을 찔렀는데, 이 인물은 "주변 정치정세에 대해 멀리 떨어져 객관적으로 평가할땐 꽤 정확한 정세분석"을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주관적 생각이 들어 주도적으로 정치적인 움직임을 할 땐 ... 삽질의 일상"이었다고 표현한 것. 분석은 명확한데 실행은 틀린다는 아이러니가 반복되는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상은 비단 이 인물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설자에서 행위자로 전환되는 순간, 객관성을 유지하던 관찰자는 자신의 판단에 과신하기 시작하곤 한다. 이를 '관찰자 이탈' 효과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명확한 정세 분석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도, 일단 자신의 이해관계가 직접 걸리고 주관적 믿음이 개입되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십상인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 거리감을 잃으면서 발생하는 인지 왜곡은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나는 정세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있을수록, 자신의 선택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약해질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건, 본인이 주도적으로 구성한 정치 세력들이 왜 연속해서 좌초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정세분석 능력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신의 행동 선택이나 전략이 실제 정치판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냉정한 피드백 루프가 작동하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마치 자신은 게임의 해설자이지만 동시에 플레이어인데, 플레이 실적에 대해서는 해설자의 명확함을 잃어버리는 그런 느낌.
한 팬으로서의 바람은 단순하면서도 절실하다. 이 인물이 정치판에 다시 뛰어들기 전에, 자신의 실패 패턴을 객관적으로 돌아봤으면 좋겠다는 것. 뛰어난 분석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타인의 정세는 정확하게 읽으면서도 자신의 선택에서만 번번이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악순환을 벗어날 길이 있을지. 다시 한번 성찰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 원문 발췌
주변 정치정세에 대해 멀리 떨어져 객관적으로 평가할땐 꽤 정확한 정세분석을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주관적 생각이 들어 주도적으로 정치적인 움직임을 할 땐 삽질의 일상이었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