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모임을 혼자 계획하고 챙기는 경험을 하다 보면, 이게 얼마나 정교한 에너지 분배 게임인지 경험하게 된다. 친한 친구들이 여럿 모이면 얼핏 복잡해 보이는 관계들이 있는 것 같다. 같은 학번인데 유독 가까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아 어딘가 어색한 친구들도 섞여 있다. 각자 다니는 직장이나 사는 지역이 다르다 보니 더더욱 분리된 소그룹도 생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모임이란 게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표면적으로는 "모이자"는 제안 한두 마디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모임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여러 층의 배려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같은 강도로 모임을 원하는 건 아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정말 간절하게 친구들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반면, 누군가는 가는 것도 좋지만 간다고 해도 무방한 정도의 태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런 '관계의 온도 차'가 모임의 지속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항상 적극적인 쪽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불균형이 반복되면, 모임을 계획하고 주도하던 사람은 점점 지쳐간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엔 즐거움으로 시작했던 일이 어느 순간 의무감으로 바뀌고, 마지막엔 거의 피로 누적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왜냐하면 관계 유지란 한 사람의 희생만으로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의 노력이 계속되려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조금씩 시간과 마음을 내야 하는데, 그게 잘 일어나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모임에 회비를 걷고, 일정을 정하고, 참석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장치들이 번거로운 형식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은 특정인에게 비용과 노력이 너무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인 것으로 보인다. 정기적인 약속은 모두가 일정을 맞춰야 하고, 회비 시스템은 한두 사람이 비용을 전담하는 불공정을 막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조가 없으면, 결국 모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한두 명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와 나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반드시 같지 않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 '좋아함의 비대칭'은 모임 안에서 또 다른 에너지 불균형을 만드는 것 같다. A가 B를 정말 좋아해서 자주 연락하고 챙긴다면, B는 A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모임에서도 이런 구조가 반복되면, 자신의 감정과 노력을 계속 투자하는 쪽은 점점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오래 유지되는 모임이란, 저절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조금씩—아주 많이가 아니어도 괜찮지만, 정말 조금씩—시간과 비용, 그리고 마음을 내려고 할 때만 비로소 가능해 보인다. 한 사람의 헌신에만 기대서는 안 될 것 같다. 관계란 결국 상호작용이고, 그게 균형을 이루려면 모두의 참여가 필수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한 사람의 희생이나 배려만으로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괜히 모임을 만들고 규칙을 정하고 회비를 걷는 게 아니더군요. 결국 모임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셈입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