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끝난 지 거의 30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 미국 의회는 F-22 전투기의 해외 수출을 완전히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당시 국방예산법에 포함된 이 조항은 첨단 스텔스 도료와 레이더 흡수 소재, 최신 항공전자 장비가 우호국을 거쳐 다른 국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기술 보호라는 대의명분은 명백한 것으로 전해진다. 냉전 시대 미국의 고급 전술 정보가 소련으로 흘러들어갔던 전례들이 의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결정이 초래한 현실은 역설적이었다. 미국 공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수량만으로는 생산 라인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고정 비용이 점점 더 줄어든 대수에 분산되면서 한 대당 단가는 계속 올라갔다. 이를 '고정비 분산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대량 생산의 핵심 이점은 같은 비용을 더 많은 제품에 나누는 것인데, 생산량이 고정되자 원가 절감은 애초 기대할 수 없게 된 셈인 것으로 보인다. 기술 기밀은 지켜냈지만, 대량 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이라는 또 다른 이득은 놓쳤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F-22는 압도적인 성능에 비례하는 압도적인 가격표를 달고 소수 정예 전력으로만 남게 됐다.

동맹국들의 처지는 더욱 억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호주, 이스라엘 같은 우방국들도 이 '판매 금지' 앞에서는 무릎을 꿀 수밖에 없었다. 미국 국방부는 이들을 위해 수출 가능한 제한 버전을 따로 개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세계 최강의 공군을 보유한 나라에서 만든 최고 성능의 전투기를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냉전 이후 미국식 '기술 보호주의'가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 공군은 이 시점에 다른 선택지를 마주하고 있었다. F-15K 도입이 그것인데, 이 항공기는 F-22와 근본적으로 설계 철학이 달랐다. F-15K는 F-15E 스트라이크 이글 기반이었고, 때문에 폭장량이 공대지 임무에 최적화돼 있었다. 마치 폭격기 수준이라고 할 정도의 대량 탄약 운반 능력은 한국 공군의 작전 개념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공중 전투로 제공권을 먼저 확보한 다음 지상 목표에 타격을 가하는 형태의 한반도 방어 전략에서는 이러한 다목적성이 핵심이었다. 지상 목표물에 대한 정밀타격 역량 없이 제공권만 장악한다는 것은 전술적으로 불완전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2002년을 전후로 F-15K 도입이 진행된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당시 F-22가 수출 금지 없이 국제 시장에 나왔다면 한국군이 실제로 선택했을까. 이는 흥미로운 반사실적 질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격이 지금만큼 비싸지 않았을 리 없다는 점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F-22는 공대공 전투에 특화된 설계였다. 엔진, 무장, 센서 모두 제공권 장악을 최우선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이 실제로 필요로 한 전술적 요구사항—광범위한 폭장량과 다목적성—과는 애초부터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군사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누군가는 미국의 수출 금지 정책을 강경함과 독단주의로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정책이 없었다면 한국은 더욱 강력한 전투기를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현실의 작전 요구에 더 정확히 부응하는 F-15K라는 선택이 결국 더 합리적이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기술 보호라는 미국의 정책이 역설적으로 한국 공군의 더 나은 선택을 유도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미국은 스텔스 도료, 레이더 흡수 소재, 첨단 항전장비가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기술 보호에는 성공했지만,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 절감 기회도 놓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