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는 순간, 쉽게 떠올라지는 것이 있다. 연탄난로다. 그저 방 한쪽을 따뜻하게 데우는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겨울 집안 모든 일상의 중심축이었고, 그 위에서 벌어진 소소한 시간들이 그 계절 전체를 만들어냈다.
연탄불이 피워지면, 제일 먼저 준비되는 건 보리차 주전자였다. 난로 위에 항상 올려놓아지는 그것. 언제든지, 집 안 어느 곳에서건 보리차가 따뜻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건, 단순한 음료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마실 때면 그 향기와 온기가 가장 자연스럽게 겨울을 채우는 방식이었고, 그 느낌은 지금껏 다른 계절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 같다. 아침에는 깊고 진했고, 오후에는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저녁이 되면 다시 팔팔 끓으면서 뜨거워지곤 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전자 속 보리차는 그렇게 24시간 그 자리에서 하루를 함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가 저물 무렵이 되면, 냄비가 올려진다. 돼지고기와 김장김치. 물론 때로는 다른 재료도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솥 안에서 밤새 끓어내려가는 모습을 본다는 건 조용한 기대감이었다. 자기 전에 다시 확인하고, 잠이 들면서도 희미하게 들리는 끓는 소리. 아침이 되면 며칠치의 반찬이 완성되어 있다. 난로 위에서의 느린 불은 비용 효율과 시간 절약을 동시에 이루어냈고, 그래서 어린 시절 많은 집들이 이 방식을 택했을 것 같다. 밤새 끓이는 동안, 집 안 모든 구석이 그 냄새로 가득 찬다. 그것이 겨울밤의 풍경이자 경제학이었다.
한밤중에 심심함이 올 때가 있었다. 혼자 남겨진 시간, 말이 없는 밤. 그럼 쥐포나 마른 오징어를 꺼내 난로 위에 올려놓았다. 타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면서 구우면, 고소한 내음이 나고 쫄깃한 맛이 된다. 간식이라기보다는 시간을 때우는 작은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식 속에 자기만의 겨울밤이 조용히 만들어진다.
연탄난로 위의 모든 음식 중 최고는 고구마였다는 생각이 든다. 벗겨지지 않은 채로 올려놓고, 충분히 익을 때까지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그 과정 자체가 별미였다. 겨울밤 어둠 속에서 연탄불을 바라보며, 고구마가 익어가는 시간을 함께하는 것. 골고루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리저리 굴려보는 손의 움직임도, 그 따뜻함을 내 손에 나눠받는 것도 모두 계절의 일부였다. 그때 그 맛이 지금껏 최고라고 느껴지는 것 같다.
겨울이 정말 깊어지는 시절, 연탄난로는 단순한 난방기구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다. 그것은 집 식구들이 모여 시간을 함께하는 장소이자, 소박하지만 따뜻한 일상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그런 겨울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다. 아파트의 중앙난방, 에어컨, 전자레인지 같은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하지만 날씨가 유독 추워지는 날이면, 그때의 연탄난로 위 보리차 주전자를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혹은 밤새 끓인 반찬의 냄새, 쥐포를 구으며 나던 고소함, 고구마의 맛까지. 그 모든 것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 속에서 형성된 어떤 감정의 결정체처럼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원문 발췌
집안에 피워놓던 연탄난로가 생각나네요. 겨울이면 집안한쪽에 연탄난로를 피워놓고 그 위에 보리차 주전자를 항상 올려놓았더랬지요.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