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의 한 게시글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뱃구멍'이라는 단어, 처음 본다는 것으로 보인다. 배(船)의 구멍인가? 뱃사공이 노를 젓는 그 구멍인가? 문맥을 헤아려보려 해도 떠오르는 건 물 위를 떠다니는 배의 이미지뿐이라는 것. 낯선 단어 앞에서 우리의 뇌는 자동으로 작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짜맞춘다.

이런 오류가 발생하는 일은 사실 매우 자연스럽다. 문장을 읽을 때 우리는 익숙한 개념들을 활용해 의미를 만들어낸다. 낯선 단어가 등장하면 어떻게든 기존의 지식 체계에 끌어맞추려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오해가 바로 이것으로 보인다. '뱃'이라는 글자를 보면 먼저 떠오르는 건 배(선박), 또는 배(복부)인데, 맥락이 불명확하면 자신이 아는 이미지로 급서 채워버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찾아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고 한다. '뱃구멍'은 '배꼽'을 뜻하는 방언이라고 전해진다. 강원도와 경상도, 전남 지역에서 사용되는 토박이 말이며, 놀랍게도 중국의 흑룡강성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도 정식으로 기록된 표준 어휘인데, 이 단어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는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가 사전에 살아있다는 것과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 사이의 간극인 것으로 보인다. 방언이 사라졌거나 폐기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언어 기록물에는 명확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의 일상 언어가 표준어로 통일되면서, 그런 지역 방언들을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어진 것뿐인 것으로 보인다. 방송이나 인터넷, 학교 교육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은 대부분 표준어 중심인 것으로 보인다. 해당 지역에 살지 않는 한, 그 지역의 토박이말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언어 세계 밖으로 밀려난다.

원문을 남긴 사람이 덧붙인 마지막 코멘트가 특히 울려 온다. "배꼽을 만진 지 10년을 넘게 기억도 안 난다"는 농담 아닌 농담 같은 말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몸에 있는 배꼽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온 세월, 그리고 그것을 가리키는 방언적 표현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현실을 한 문장에 압축해낸 것처럼 보인다.

'뱃구멍'을 처음 접한 이 경험 자체가 한국어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맥락이 없는 낯선 방언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알고 있는 것들을 재조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오독이 일어난다. 이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현대 한국어 사용자가 얼마나 표준어 일색의 언어 환경 속에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순간인 것으로 보인다. 국어사전에는 수많은 방언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가 접하는 일상의 언어는 그중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발견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배의 구멍인가? 뱃사공이 노젓는 그 구멍인가? '뱃구멍'은 '배꼽'을 뜻하는 경상도, 강원도 지역의 방언입니다. 뱃구멍 만진 지 10년은 넘을 정도로 기억도 안 나네요.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