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생신을 맞아 문자 메시지로 인사를 드렸다. 짧지만 정성 어린 마음을 담아 따뜻한 말씀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평범한 며느리라면 할 수 있는 범위의 인사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이었다. 시댁 단톡방에 시누이가 올린 글을 확인하는 순간 모든 게 달라졌다. "요즘 며느리들은 전화 한통이 그렇게 어렵나." 명확한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누구를 겨냥한 글인지는 뻔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제 문자로만 인사했던 바로 그 자신인 것으로 보인다.
이 장면에서 주목할 점은 저격의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익명 게시판의 온라인 싸움처럼 노골적이지 않다. 시댁 단톡은 가족이라는 명목 하에 모든 식구가 참여하는 공간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공지사항도 올라오고,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면 알림도 받는다. 누군가 집안의 큰일을 겪고 있으면 그것도 공유된다. 이렇게 뭔가를 '관리'하는 기능과 감시 기능이 함께 작동하는 공간에서, 특정 행동을 두고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글이 올라온다. 이름을 붙이지 않아 겉으로는 일반론처럼 보이지만, 맥락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명백히 누군가를 향한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의 저격이 갖는 애매함을 생각해 보자. 상대방을 완전히 지우지도 않고, 완전히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름 없이 올려진 글이므로 "나를 말하는 거 아니겠지"라고 부인할 여지도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맥락상 자명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인 비난도 아니고, 명확한 지지도 아닌 이 모호한 위치가 당사자에게 가하는 심리적 압박은 생각보다 크다. 시댁 단톡방이 가진 또 다른 특성은 '기대'의 강압성인 것으로 보인다. 가족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 기본을 지키지 않는 행동이 눈에 띄면, 직접 말하는 대신 이런 식으로 글을 남긴다. 글로 남기는 방식은 여러 순기능을 제공한다. 나중에 부인할 수 있고, 직접적인 책임질 필요도 없으며, 무엇보다 "이것은 너를 위한 충고"라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 다음이 문제다. 글이 올라온 뒤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읽음 표시는 하나둘 사라져 갔다. 모두가 읽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댓글도 없고, 반응도 없고, 그저 침묵뿐이었다. 글쓴이의 당사자는 이 침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혹시 가족들도 시누이의 지적이 맞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불편한 상황이라 그냥 외면하기로 한 걸까. 명확한 지지도 없고, 명확한 반박도 없이, 그저 모두가 읽고 침묵하는 것만 남겨졌다. 그리고 당사자는 이 침묵 속에서 혼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순간부터 자기검열이 시작된다. 문자 인사가 정말 실례였나. 전화를 했어야 하나. 더 자주, 더 정성 어린 인사를 했어야 했나. 다음 번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식으로 생각은 꼬리를 문다. 단톡방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겉으로는 작은 일이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가족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앞으로의 행동을 조종하기 시작한다. 다음엔 문자가 아니라 반드시 전화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그런데 전화를 한들 그것도 정답인지 알 수 없다. 시댁 단톡방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를 조종한다.
📌 원문 발췌
시누이가 요즘 며느리들은 전화 한통이 그렇게 어렵나 이렇게 올렸어요 다들 읽고 아무도 답 안 하는데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