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비상계단에서 쓴 글이라고 시작했던 이 사연은, 겉으로는 아버지의 돈 요청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 실제 문제는 그보다 훨씬 뒤에 숨어 있었다. 그것은 새롭게 만든 가족 경계 안으로 옛 문제가 물리적으로 침투해온 사건이고, 동시에 자신이 그것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다.
글쓴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술버릇을 알고 있었다. 술을 마시면 집기를 던지는 사람. 그 아래에서 자란 아이는 자동으로 "내가 엄마를 달래야 한다" "내가 아버지 뒷수습을 해야 한다"는 역할을 배웠다. 결혼이 정해지자, 처음엔 그 사람이 가장 두려워한 것도 당연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혼식이 아버지 때문에 망가질 수 있다는 공포. 상견례 때부터 밤새 술병을 치웠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피로연은 그 준비를 모두 무너뜨렸다. 아버지가 소주 세 병을 마신 뒤 사돈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딸을 데려가 고생시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으름박스러운 경고였다. 순간 시어머니의 표정이 굳었고, 사진기사도 카메라를 내렸다. 그 장면들은 글쓴이의 뇌에 낙인처럼 남았다. 이미 그때부터 "내가 이 집안의 부끄러운 부분을 남편 쪽 가족에게 보여줬다"는 죄책감이 실처럼 감겨 있었다.
며칠 뒤,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직접 시댁에 전화해서 "요즘 어려우니 오백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시댁 번호는 아마도 결혼식 방명록에서 알아냈을 것 같았다. 이 통화는 단순히 돈 문제였을까.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가족과의 경계 자체를 침범한 사건이었다.
결혼을 통해 어렵게 세운 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고, 동시에 글쓴이는 자신이 그 선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감을 느꼈다. 원가족 문제를 혼자 감당해온 사람일수록, 새로운 경계가 흔들리면 자동으로 "내가 막아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피해자인데도 죄책감이 더 크다.
시어머니는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넌 많이 힘들었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데 그 한마디가 더 뼈아팠다. 시어머니의 측은한 말 속에서 글쓴이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뒤늦게 깨달았고, 그 자리에서 울었다.
아버지에게 전화했을 때는 달랐다. 술 취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사돈끼리 돈을 빌리는 일도 있지, 넌 왜 난리냐." 그리고 나온 말은 익숙한 것이었다. "내가 너 키우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시집 가더니 남의 집 편만 든다."
현실은 달랐다. 대학 등록금은 본인이 알바를 해서 냈다. 아버지의 카드값은 본인이 갚았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엄마를 폭행했을 때, 경찰을 부른 것도 본인이었다. 어린 나이에 가정의 위기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아온 사람이, 성인이 되고 결혼한 뒤에도 여전히 그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엄마에게 전화했을 때도 같은 말만 돌아왔다. "너 좀 참아라." 수십 년을 그 말로 일관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아버지 번호를 차단하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엄마가 아버지의 화풀이 대상이 될 게 뻔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 엄마가 울면서 전화할 것이고, 자신이 돈을 보내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남편은 퇴근 후 아무 말 없이 안아줬다고 한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미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문제를 남편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자책도 생겼다. 앞으로 아기까지 낳으려고 준비 중인데, "이런 피를 물려줘도 되나"라는 죄책감까지 떠안고 있었다. 자신이 겪은 상처가 다음 세대를 괴롭힐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른아홉 살인 지금도, 아버지 목소리만 들으면 열 살 자신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수십 년이 흘렀어도 그 공포 회로는 살아 있었다. 어릴 때 자신이 "무언가를 막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역할을 너무 일찍 배웠기 때문이었다.
결혼은 이 사람에게 "탈출"이 아니라 "책임 영역의 확대"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남편과 새 가족까지 자신이 보호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책임감이 생겨났다. 한 익명 커뮤니티 글쓴이의 이 사연은, 원가족 문제를 혼자 감당해온 사람들이 결혼 후에도 겪게 되는 악순환을 보여준다. 그것은 개인의 불운이라기보다는 특정한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처럼 보인다.
📌 원문 발췌
아빠가 시댁에 직접 전화를 해서 사돈 내가 요즘 좀 어려우니 오백만 빌려달라고 했대요 시댁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