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2주 남짓 앞둔 상황에서 시아버지로부터 받은 한 통의 요청이 글쓴이를 혼란에 빠뜨렸다. 본인이 아이를 낳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농담 같은 톤에 가벼운 일화처럼 들렸으나, 시아버지의 설명은 예상외로 진지한 분위기였다.
시어머니가 임신했을 당시 자신이 분만실에 함께하지 못했던 것이 평생의 아쉬움으로 남았다고 하며, 손주가 태어나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도 함께 있고 싶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요즘은 탯줄도 대신 잘라 준다더라"는 구체적인 언급까지 덧붙였으니, 이는 단순한 감정적 외침이 아니라 실제로 실행 가능한 것인지까지 알아본 셈이었다.
글쓴이는 순간 자신의 신체가 공공의 관찰 대상으로 취급되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분만실은 의료 행위가 일어나는 곳이면서 동시에 산모의 가장 취약한 순간이 노출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곳에 누가 들어올지를 결정하는 권리가 본래 산모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자율권을 존중받지 못한 기분이 치솟았을 것으로 보인다.
남편의 초기 반응은 흥미로운데, 처음엔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식이었다고 한다. 가족 간 불편함을 피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르지만, 배우자의 신체 경계가 침해되는 순간에 그것을 지켜주지 못한 셈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함께 아이를 키워야 할 파트너로서 중요한 순간에 등을 돌려주는 태도로 읽혔을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시아버지의 다음 말인 것으로 보인다. "'며느리이기 전에 한 사람의 여자인데, 왜 혼자 유난을 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문장은 경계 침해 상황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요구를 거부하는 상대를 '과민하다', '예민하다', '유난인 것으로 보인다'로 낙인찍는 것 말인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를 행동의 주체로 보지 않고 시댁의 논리에 맞춰야 할 타자로 위치시키는 언사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이 됐다"는 시아버지의 감정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다만 그 감정이 타인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으로 환산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의 신체 경험은 글쓴이의 것이고, 누가 그 순간을 목격할지는 철저히 본인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이 의료 윤리의 기본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이튿날 시어머니를 통해 정중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분만실에는 남편만 함께하겠으며, 출산 후에 연락을 드리겠다는 뜻이었다. 원칙을 분명히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해 들은 시아버지는 불쾌해했으며, 남편에게까지 육아에 대한 언급을 하며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마치 글쓴이의 거절이 도리가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글쓴이는 자신의 반응이 '예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이 자기검열 자체가 중요한 신호다. 경계 침해를 당한 피해자가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건가" 하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패턴은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심리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분만실에 누가 들어올지, 출산의 순간을 누구와 공유할지는 산모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의료 현장의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더 근본적으로 한 인간으로서의 신체 자율권과 맞닿아 있는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결국 당신의 선택을 지지했다는 것도 중요한 신호다. 당분간 시부모님을 뵙기가 부담스럽다는 느낌도 자연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건강한 출산과 회복이 우선이고, 그 이후의 관계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정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조언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최근 시아버지께서 제가 출산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며느리이기 전에 한 사람의 여자인데 왜 혼자 유난을 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