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에게서 예상치 못한 말을 듣게 되었다. 시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언젠가는 함께 살아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들으며 글쓴이가 느낀 것은 단순한 안타까움이 아니었다. 남편이 점차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면서, 글쓴이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결혼 전부터 남편은 어머니께 동거를 약속해뒀다는 것이었다.
글쓴이가 느낀 당혹감의 크기는 이 약속 자체에만 있지 않았다. 상견례를 할 때도, 신혼집을 구할 때도 이 계획은 단 한 번 언급되지 않았다. 마치 남편만 알고 있던 비밀처럼, 5년간 침묵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들을 지나오면서, 글쓴이는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선택을 한 셈이었다.
남편의 설명은 이랬다. 미리 말하면 글쓴이가 부담스러워할까봐 꺼냈다는 것. 배려라고 표현하려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이유가 글쓴이를 더욱 화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왜인가. 배려인지 은폐인지를 가르는 기준은 상대방이 그 선택에 참여할 수 있었는가의 여부로 보인다. 미리 말하면 결혼 안 할까봐 숨긴 거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남편이 '나중에 알아도 괜찮을 거야'라고 독단했을 때, 글쓴이는 이미 그 선택권을 잃고 있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함께 살 상대방이 누인지다. 시어머니는 명절때마다 우리 살림에 참견하고,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서도 자꾸 본인의 방식을 강요하는 분이었다. 이런 분과 한 집에 산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 모든 결정이 타협과 설득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만 해도 숨이 가쁘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상황이었다.
글쓴이가 남편에게 던진 질문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자신의 부모님이 나중에 건강이 안 좋아지면 똑같이 모실 수 있는 거냐는 것이었다. 남편의 답변은 '상황을 봐서 생각해보자'는 애매한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비대칭성이 명확하다. 자신의 부모는 '당연히' 모셔야 하는 의무이고, 글쓴이의 부모는 '상황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라는 차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의 가정 배경도 이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글쓴이는 막내이고, 부모님도 건강하셨다. 형제들도 있어 부양의 책임이 자신에게 무겁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의 세계는 달랐다. 장남의 책임이 당연하게 존재했고, 그 책임을 아내에게까지 나누는 것이 자명하다고 여겨졌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기준이 지금도 유효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이 글에는 댓글로 엇갈린 의견이 달렸다. 일부는 남편이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을 명백한 문제로 봤다. 다른 일부는 애초에 장남과의 결혼을 결정할 때 이 정도의 각오는 해야 하지 않았냐는 관점이었다. 두 진영의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글쓴이 자신도 어느 쪽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시어머니의 나이를 생각하면 한 집에 사는 것이 필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부부 관계의 선택이 되려면 자신도 그 선택에 참여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이 갈등의 중심은 특정 행동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정보를 언제 공개할지, 누가 결정할 수 있는지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남편이 기대했던 '당연함'과 글쓴이가 기대했던 '동의'가 애초부터 어긋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장남이기에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명제가 지금 시대에 유효한지, 그리고 그것이 아내의 구체적인 동의 없이 진행될 수 있는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보인다.
📌 원문 발췌
결혼하기 전에 이미 어머니한테 나중에 같이 살겠다고 약속을 했었다는거예요. 저는 이 얘기를 결혼하고 5년이 지난 지금 처음 들었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