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는 형제와 작성자 부부를 평생 차별한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히 대접의 정도 차이가 아니라, 정서적·물질적·시간적 모든 영역에서다. 형제 쪽이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하자, 시부모는 "마음이 짠해서" 그쪽에 더 많이 베풀었다는 설명뿐이었다. 명절 모임에서 손주들을 놓고도 차별이 노골적이었다. 다행히 작성자의 친정이 많은 사랑을 주어서, 아이들은 외가의 정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시댁의 차별을 지워주진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혼 이후 받은 물질적 지원은 한복 한 벌과 금비녀 하나뿐이었다. 대신 시부모는 형제에게 재산을 집중해 몰아주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저기 긁어모은 자산들이 형제 쪽으로 흘러갔다. 극에 달한 건 시부모가 살던 집까지 형제에게 증여한 것. 당사자들이 이사를 가고도 새로운 주소를 작성자네에게 알리지 않았다. 형제의 아내가 전화를 받을 때까지, 작성자 부부는 그들이 이사 갔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시부모도, 형제도, 이미 손을 놨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추석, 시부모가 작성자네 집에서 차례를 지내라며 연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는 시댁에서 하던 명절이었다. 이제부턴 너희가 챙겨라는 말 같았다. 이 말에 남편은 처음으로 크게 화를 냈다. 평생을 "천애고아처럼" 살아왔다고 느껴온 남편에게, 갑자기 부모라는 존재가 나타나 책임을 묻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지 분노가 터져나왔다. 작성자는 남편의 반응에서 수십 년의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되는 걸 봤다.
최근 시부모의 태도는 달라졌다. 울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건다. 손주들의 나이도 모르면서 선물을 사주겠다고 한다. 갑자기 '부모'로서의 책임을 느끼려는 건지, 노후가 불안한 건지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다. 남편은 "절대 안 간다"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작성자는 남편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심한다. 시부모가 경제적으로 무일푼이고 노후 대책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작성자가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다. 분노도 있지만, 그보다 강한 건 역할의 애매함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먼저 나서서 시부모를 챙기면 좋은 며느리로 비칠 것 같고, 거부하면 나쁜 며느리로 낙인찍힐 것 같다. 남편이 점점 속으로 체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로 향할까봐 두렵다.
한국의 익명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 걸 볼 수 있다. 한쪽 자녀에게 재산을 먼저 몰아준 뒤, 그 자녀가 연락을 끊으면, 차별받던 다른 자녀에게 갑자기 부양을 요청하는 일. 그리고 그 와중에서 남편의 배우자(며느리나 사위)는 정서적 중간지대에 서게 된다. 혈연이라는 사실만으로 '자동 부양 의무'가 발생하는가? 이 사례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 원문 발췌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린 적 없던 남편이 처음으로 화를 내더라고요, 천애고아처럼 살았는데 이제와서 어디서 부모가 생겼냐면서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