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고를 때 사람들은 저마다 기준을 세운다. 외모, 키, 학벌, 직업. 이런 조건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개인의 취향이지, 뭐하는 거냐"고 말한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부모가 이혼한 사람은 피한다"는 기준을 제시하면 갑자기 "편견인 것으로 보인다", "차별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반응이 터져나온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이 질문을 도발적으로 던졌다. 작성자는 이혼가정 출신을 배우자 조건에서 제외하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모가 불행해서 이혼하는 경우가 많지 않냐는 것. 그렇다면 자녀에게도 어느 정도의 결핍이나 상처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는 합리적이 아닌가 하는 논리였다. 결핍이 있을 가능성을 미리 인지하고 거르는 것이 과연 죄인지, 굳이 남의 판단을 지배하려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도 담았다.

글쓴이는 이를 외모나 학벌을 보는 것과 같은 선택의 수준으로 봤다.

여기서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 외모와 학벌은 당사자 본인이 어느 정도 통제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인 것으로 보인다. 운동을 하면 체형이 변할 수 있고, 노력하면 학벌을 높일 수 있으며, 성형이나 패션으로 외모를 가꿀 수도 있다.

반면 부모의 이혼 여부는 본인이 선택하지도, 바꿀 수도 없는 요소다. 태어났을 때 이미 정해진 사실이고, 어떤 노력으로도 돌이킬 수 없다.

즉, 외모를 보는 것과 가정환경을 보는 것이 정말 같은 성격의 선택 기준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배경이나 계층에 기반한 배제와 개인의 특성(외모, 능력)을 기준으로 한 선택을 동등하게 취급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핵심 쟁점인 것으로 보인다.

작성자의 논리를 따르면 "얼굴보는 것도 조건, 키 보는 것도 조건, 학벌 보는 것도 조건이라면, 이혼가정을 거르는 것도 조건일 뿐 아니냐"는 결론이 나온다. 마치 선택의 기준들이 모두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다.

하지만 비판 측에서는 이 논리가 다양한 선택 기준을 의도적으로 평탄화한다고 본다.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배경으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과 개인의 속성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은 다르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해당 게시글 댓글 섹션에서는 논쟁이 뜨거웠다. 일부는 작성자를 지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혼은 개인의 결정이고, 배우자 선택은 철저히 내 기준이지 남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면 개인 취향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의견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그건 편견일 수 있다"며 반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혼가정 출신이 모두 결핍을 가진 것은 아니며, 단순히 가정배경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배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또한 "모든 이혼가정 자녀가 불행한가", "행복한 가정의 자녀가 모두 건강한가"라는 반문도 제기됐다.

결국 이 논쟁의 핵심은 '개인 취향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으로 귀결된다. 배우자 선택이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자유가 특정 집단(이 경우 이혼가정 출신자)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기준으로 작동할 때, 그것이 단순한 취향인지 편견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도 현실인 것으로 보인다. 한 개인의 선택이 누적되면 사회적 낙인이 되기도 한다.

결혼 시장에서의 선택 기준은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세우는 그 기준이 합리성에 기반한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 편견을 무의식중에 반영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결혼과 사랑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타인을 어떤 방식으로 평가하고 배제하는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계속 숙고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 원문 발췌

결핍이 있을 것 같아서 이혼가정을 거르는 게 죄일까? 저게 잘못된 거라면 얼굴을 보는 것도 잘못이고, 키를 보는 것도 잘못이고, 학벌을 보는 것도 잘못이 되는 건가?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