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9년차. 부부의 일상에는 끝이 없는 불화가 흐르고 있었다.

신혼부터 의견이 충돌해 왔다. 남편은 계획적이고 예민한 성향에 한식만 고집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내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였고, 음식도 가리지 않았다. 식습관부터 생활 방식까지 맞는 게 거의 없었다. 딸 둘을 낳고도 이 기본적인 차이들이 좁혀지지 않았다.

남편과 대화를 하려고 해도 항상 싸움으로 끝났다. 처음엔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지만, 언제부턴가 대화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었다. 둘 다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내는 이 관계가 더는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다. 부부는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들도 있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았지만,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판단은 공동의 것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진단이 내려졌다.

올해 초, 남편이 루게릭병(ALS)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불치병이었다. 아내는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을 위해 현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것이 모든 걸 바꾸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병 진단 이후에도 남편의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아내의 성향도 여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부는 여전히 싸웠다. 동정심이나 연민이 근본적인 성격 불일치를 덮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혹시 병이 두 사람을 가깝게 할 거라 기대했다면, 그것은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위기가 모든 관계를 치유하진 않는다는 것을 아내는 깨달았다.

아내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연민으로만 살아야 하는 걸까. 앞으로 남편의 병이 진행되면 전면적인 간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은? 두 돌이 갓 넘은 막내를 한 손에 안고 병약한 남편을 다른 손으로 돌봐야 한다는 현실이 떠올랐다. 견딜 수 있을까.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엄마가 간병에만 몰두한다면 충분한 애정과 돌봄을 받을 수 있을까. 특히 가장 어린 딸은 아직 엄마가 필요한 나이인데 말인 것으로 보인다. 아내는 아이들의 미래와 자신의 미래, 그리고 남편의 현재 사이에서 갈라졌다.

그리고 가장 무거운 질문이 남았다. 남편을 떠나면 자신은 나쁜 사람이 되는 건가.

이것이 가장 복잡한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불치병 환자를 둔 배우자가 느끼는 혼란은 사실 자신의 감정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자신과 자녀의 삶을 지키려는 것과 환자를 버리는 것 사이에는 선명한 경계가 없다. 아내는 떠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견딜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구원을 찾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절실한 물음이 도덕적 죄책감으로 변해버렸다.

미취학 자녀를 둔 아내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단순한 결혼 갈등이 아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간병과 양육이라는 두 가지 부담이 동시에 가중되고 있었다. 아내는 이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글의 댓글에서는 어떤 사람들은 '아직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거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너의 인생도 소중하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두 맞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아내의 구체적인 현실 앞에서는 모두 너무 가볍게 들렸다.

결국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무게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연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고, 아내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떠나는 것도 정당할 수 있다. 둘 다 틀린 게 아니다. 단지 극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물음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 물음 자체를 비난할 수 있을까.

아내는 지금도 그 갈림길 앞에 서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올해 초 남편이 루게릭 진단을 받았어요. 슬프게도 아프다고 해서 성격이 바뀌지는 않더라고요. 여전히 계속 싸우고 있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