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친구를 만날 때면 자연스럽게 그 친구의 가족도 함께 만난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 밖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 친구는 정말 사랑하는데, 친구의 자녀에게는 도무지 호감이 가지 않는 상황 말인 것으로 보인다.
한 누리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 따르면, 사이 좋은 친구의 초등학생 아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어떤 벽이 생긴다고 한다. 겉으로는 밝게 대하지만 내심으로는 "뭔가 정이 안 가"는 감정이 계속된다는 것. 아이의 외모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이런 감정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혈연도 아니고 의무도 없는 남의 아이에게 자동으로 정이 생기길 기대하는 사회 통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친구는 좋아하니까 친구의 자녀도 당연히 좋아해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이 있어 왔던 것.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외모뿐 아니라 말투, 눈빛, 분위기 같은 눈에 띄지 않는 '기운'이 사람마다 다르고, 그 기운이 자신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해당 게시글 글쓴이는 아이의 성격을 "시큰둥하고 인사성이 없는" 편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이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려 해도, 감정이라는 게 이성을 따르지 않는다. 같은 나이대인데도 어떤 아이는 순수한 눈빛과 밝은 에너지로 "예쁘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아이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비논리적이고 불공평해 보이지만, 인간의 호감도라는 게 원래 그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친구의 아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사랑할 의무가 생기는 건 아니라는 게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말하기 매우 어려운, 금기에 가까운 감정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래서 글쓴이처럼 혼자 이 감정을 안고 "자꾸 만나면 티날까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해봤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입 밖으로 못 낼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감정 자체를 없애려고 애쓰는 것보다 그 감정을 인식하면서 "관계는 잘 유지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친구에게는 정직하게 행동하되, 아이에 대한 비호감을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가끔 만나는 사이이고 의무가 없는 관계라는 점에서, 정중하고 따뜻한 표면적 관계만 유지해도 충분해 보인다.
직접 겪어보니 이런 감정이 단순한 성격 차이나 외모 차이보다는 '타이밍'과 '상황'에 크게 좌우되곤 한다. 아이가 피곤하거나 어색한 상태라면 더욱 시큰둥해 보이고, 반대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순간이 오면 호감도가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모든 관계에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처럼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좋아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에 휩쓸려 친구와의 관계까지 손상시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친구와 아이와의 거리감은 나쁜 게 아니라 현실일 뿐이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선한 행동을 유지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 원문 발췌
사이좋은 친구이고 잘하는 사이인데 친구 아들을 만날 때마다 티는 못 내지만 뭔가 정이 안 가고 안 예뻐 보여요. 성격이 친구와 다르게 시큰둥하고 인사성이 없는 편이긴 한데, 같은 나이인데도 어떤 아이는 예뻐 보이고 어떤 아이는 그렇지 않아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