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중 나대는 특정 외모의 사람이 더 거슬린다. 길거리에서 어깨가 닿을 뻔한 순간, 상대방이 누구든 피하는데, 그 사람이 특정 체형이면 분노가 차오른다. 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의 고백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소개할 때 키 크고 마른 체형이라고 명시한 뒤, 특정 체형의 사람들에 대해 갖는 혐오감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뚱남도 싫지만, 뚱녀에게는 더 가혹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고백한 것으로 전해진다. 평범한 체형의 여자가 같은 행동을 해도 그냥 지나치는데, 특정 체형의 여자가 강의에서 나대거나 길에서 옷깃을 부딪히면 '혐오'라는 감정으로까지 치솟는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글쓴이 본인도 이 감정이 일관성이 없다는 걸 안다. "왜 나는 이럴까"라고 스스로를 질문했으니까.
편견이 판단보다 먼저 온다
이 심리 구조는 역설적인 것으로 보인다. 보통 인과 관계는 이렇게 흘러간다. 누군가의 행동을 목격한다 → 그 행동이 맞는지 그른지 판단한다 → 그 사람을 평가한다. 그런데 글쓴이의 고백에서는 순서가 반대다. 특정 체형이라는 외형 정보가 먼저 감정을 결정하고, 그 다음에 같은 행동도 다르게 해석된다. 판단의 근거가 행동에 있지 않고 외모에 있다는 증거다.
만약 글쓴이가 어떤 여자가 강의 중 나대는 걸 봤다면, 보통 "저 사람 시끄럽네" 정도의 감정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여자가 특정 체형이라는 걸 알면, 감정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나대는 행동 자체는 변하지 않았는데, 그 행동을 보는 글쓴이의 내부 평가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이 바뀐다. 이건 순수한 판단이 아니라 자동화된 편견의 작동인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적으로 이를 암묵적 편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의식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반응이 빠르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편견 말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바로 그 상태인 것 같다. 자신이 비이성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순간마다 그 감정에 지배당한다.
신체 조건 언급의 의미
글쓴이가 자신의 신체 조건을 굳이 명시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나는 키크고 마른 체형인데도"라는 전제. 이 문장은 여러 층의 의미를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나는 해당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혐오 대상과 자신을 명확히 분리함으로써, 그 감정이 객관적 관찰이지 편견이 아니라고 암묵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 만약 글쓴이 자신이 특정 체형이었다면, "혹시 내가 질투하는 건 아닐까" "신체적 열등감 때문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길 여지가 있다. 하지만 "나는 마른 몸인데도"라고 선언함으로써, 그 의심의 여지를 없애려는 것 같다.
또한 이 문장은 '나는 이렇게 선호되는 조건인데도 저 외모는 싫다'는 암묵적인 위계를 드러낸다. 자신이 명시한 체형은 바람직하다고 여겨지고, 그에 비해 특정 체형은 그렇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글쓴이가 자신의 신체 조건을 이렇게 명시한 건, 혐오의 기준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무의식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자각은 있으나 제어는 안 된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글쓴이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해하면서도 바꾸지 못한다. "왜 나는 이럴까"라는 질문이 커뮤니티에 올라간 이유는, 글쓴이가 자기 감정이 불합리하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다음 번 강의에서 특정 체형의 사람이 나타나면, 이 자각이 감정을 막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그걸 안다. 그래서 더 답답해하는 것일 수 있다.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이해가 행동을 바꾸지는 못하는 그 무력감. 그것이 글쓴이가 고백을 나눈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런 심리 상태는 비단 외모 편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흡연자가 담배의 해로움을 알면서도 피우고, 다이어트 중인 사람이 유혹에 진다.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신념, 그리고 행동 사이의 괴리를 경험하는 것은 흔한 일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괴리가 타인을 혐오하는 형태로 나타날 땐,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다.
커뮤니티의 엇갈린 반응
이 고백은 댓글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는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한쪽은 글쓴이에게 동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 대한 편견이 있다" "너무 자책하지 마" "자각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식의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이들은 글쓴이가 비이성적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인정하되, 그것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약점이라고 본다.
다른 한쪽은 비판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건 편견이 아니라 선택된 혐오다" "행동을 고쳐야 한다" "자각만 하고 끝내면 안 된다"는 의견들이 달렸다. 이들은 글쓴이가 자신의 감정을 합리화하려고 한다고 보고, 그 무력감이 실은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라고 지적한다.
둘 다 일리가 있다. 편견은 인간의 뇌가 효율성을 위해 만든 무의식적 도구이고, 따라서 완전히 없애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동시에 그 불가능성을 핑계로 노력을 멈추는 건 다른 문제라는 지적도 타당하다. 글쓴이가 느끼는 무력감은 실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동 변화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이 커뮤니티에서 갈리는 이유는, 결국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이 다르기 때문일 것 같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편견을 인정하고 용서하는가, 아니면 편견을 자각하고 저항하는가. 글쓴이의 고백은 그 문제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사례로 보인다.
📌 원문 발췌
강의시간에 나대거나 길에서 어깨 닿을 것 같은데 난 피하면 개빡쳐… 뚱녀가 저러면 그 사람을 혐오하게 돼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