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마주칠 때마다 느끼는 낯선감이 있다. 겉모습은 분명 어른인데, 마음속 목소리는 여전히 그때 그대로다. 성숙해 보이려 다듬은 표정, 책임감 있게 들리도록 다듬은 말씨, 배려심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모든 제스처가 마치 정해진 스크립트를 따르는 배우처럼 느껴진다. 혹시 내가 성장한 게 아니라, 연기하고 있는 걸 깨달을 때의 그 어색함. 그것이 많은 사람이 어느 날 거울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책임감 있는 누군가가 생겨났을 때부터, 세상은 달라진다. 아이를 낳거나, 부모를 돌봐야 하거나, 일에서의 위치가 바뀌거나. 혹은 그보다 작은 것들—친구 앞에서 먼저 웃지 않기, 동료의 실수를 덮어주기, 가족의 기분을 살피기. 이런 무수한 순간들이 쌓이면서, 자신의 감정을 뒤로 미루는 습관이 생긴다. 참고, 조심하고, 배려하고, 발버둥 치다 보니 어느 새 그런 게 당연해진다. 누가 명시적으로 '이제 넌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상황이 그렇게 몰아붙인다.

우리가 '어른 흉내'라고 부르는 것들을 살펴보면, 사실 그건 매우 구체적인 행동들의 축적인 것으로 보인다. 깊은 한숨을 참고 웃음을 짓는 것. 마음이 부서져 있어도 누군가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절반만 꺼내고 나머지는 삼키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척하는 것. 이 모든 게 모여, 어느 날 깨어 보니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만든다. 요구되는 역할에만 집중하다 보니, 본래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든 변화가 의식적 결심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하루아침에 '나는 이제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한 게 아니다. 상황에 떠밀려, 책임에 짓눌려, 어느 새 어른처럼 행동하게 된 것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다. 나는 분명히 성장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잃은 것 같은 기분. 용감함, 순진함, 자신감—그런 것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혹은 그것들이 내게 남겨진 에너지까지 다 빨아가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비판하기만 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면, 배려해야 한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이 정도의 '어른 흉내'는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되어버렸다는 점이고, 내면의 자신감마저 함께 사라졌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간극—나이는 먹었지만 내면은 여전히 불안정한 자신, 역할은 완벽하게 해내지만 마음은 흔들리는 자신—이 간극이 우리 모두가 겪는 현실인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이렇게 말할 때, '나도 내 안에 그런 16살이 있어'라고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울 너머의 나는 계속 나이를 먹겠지만, 이 안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리는 없다. 아마 그 간격이 평생 줄어들지 않을 거고, 그게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동시에 조금 더 외롭게—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 원문 발췌

나이를 먹어가면서 지켜야 하는 존재들이 생겨나다 보니 참고 조심하고 배려하고 발버둥 치면서 살아가면서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어른 흉내를 내면서 살고 있는 거죠.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