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반, 한 도시의 고등학교 졸업반 중 누군가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그냥 개인의 성취가 아니었다. 온 동네가 알 정도였다. 부모가 며칠 뒤 이웃 집에 가서 소식을 전하고, 명절 때 친척 모임에서도 모두 그 합격을 축하했을 만큼, 드문 경사였다.
그 지역에서 가장 명문이라 불리던 ***대학의 합격은 더더욱 그랬다. 1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 심지어 합격자가 없는 해도 많았다. 이렇게 희소한 성취였기에 학교 앞 슈퍼에서도 입소문이 났고, 누군가의 자녀가 대학에 갔다는 소식은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서 며칠간 화제가 되었다.
당시 대학 진학이라는 것 자체가 동네에서 '사건'으로 취급될 만큼 예외적인 성취였다. 부모 세대에서는 대학을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엘리트'로 불렸고, 자녀가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은 집안의 영광이자 사회적 상승을 증명하는 표지였다. 따라서 합격 소식 하나는 마을 전체의 자랑감으로 번지고, 수개월이 지나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렇게 한 명의 성공사례가 마을 청소년들에게는 꿈의 대상이 되고, 부모들 사이에서는 "우리 아이도 저렇게 되길"이라는 열망으로 파급되곤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뭔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두 해의 변동이 아니라, 거의 매년 진학자 수가 눈에 띌 정도로 불어나는 변화였다. 동창들 중 대학을 가는 비율이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졌다. 중학교 때 함께하던 친구들의 절반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모습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통계로 정확한 연도를 짚기는 어렵겠지만, 지역의 한 주민으로서 '직접 체감한' 변화는 매우 가파르고 드라마틱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대학은 점차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일반적인 진로'로 인식되어 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90년대 중반까지 이 추세는 계속됐다. 합격이 동네의 '사건'이 되던 시대는 서서히 물러나고, 대신 합격이 당연한 기대치가 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 체감의 변화가 담고 있는 의미는 생각해볼 만하다. 한편으로는 교육 기회의 확대와 국가적 인적 자본 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이 무분별하게 증설되면서 학벌 경쟁이 심화되고, 입시 과열의 시대로 진입하는 서막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이 시기의 진학률 급증은 단순한 교육 접근성의 증가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경쟁의 장으로 점진적으로 재편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회고담이 담고 있는 것은 순수한 추억만이 아니다. 여기엔 통계 그래프가 뒤늦게 확인해주는 변화를, 지역의 주민들이 먼저 몸으로 감지했던 그 '앞감각'이 담겨 있다. 숫자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사회 풍경의 미묘한 전환점, 그리고 그 전환이 이후 한국 교육과 입시 경쟁의 심화로 이어지는 길목을 담고 있다. 80년대 초엔 '동네 자랑'이었던 대학 합격이 90년대 중반엔 '기본 코스'가 되어버린 그 사이, 한국 사회는 커다란 문화적 전환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만 해도 온 동네가 다 알고, ***대는 1명 있을까 말까에 없을 때도 많았습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 사이 진학자 수가 드라마틱하게 가장 빠른 증가율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