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익명 커뮤니티 글쓴이가 던진 질문인 것으로 보인다. 좋고 싫음은 개인의 몫이지만, 그 감정의 근거를 추적하면 흥미로운 지점들이 드러난다. 특정 정치인 두 명을 놓고 생각해보니, 단순 호불호를 넘어 '그들이 말하는 방식 자체'가 신뢰 가능성을 처음부터 깎아내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통적으로 한 사람의 품질을 평가하는 기준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틀이 있다. 몸가짐, 말씨, 글, 판단력 순서로 인물을 본다는 뜻인데, 어쩌면 현대 정치인을 평가하는 렌즈로 가장 유효한 것 중 하나일 수 있다. 특히 '말(言)'이 공중에 닿는 순간, 그 어조와 논리 구조가 모든 걸 결정한다는 점에서 말인 것으로 보인다.

***라는 인물이 싫어진 첫 계기는 그 말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강한 어조의 반말, 높아진 톤, 설득보다는 압박에 가까운 표현들. '방송'도 아닌 '개인 채널'이라 할지라도, 화면 너머 누군가는 듣고 있다. 그런데도 상대방을 몰입시키거나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마치 이미 판단을 내린 상태로 단정하듯 말을 이어간다면, 내용이 아무리 맞아도 감정적으로 거리감이 생긴다는 평가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강한 주장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니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강하고 명확한 주장도 필요하다. 다만 그 강함이 강한 근거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걸 묻는 것으로 보인다. 강한 어조는 강한 논증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럴수록 청자들은 의심하게 되고, 실제로 그 말이 어떤 현실적 기반 위에 있는지 묻게 된다.

***의 경우는 다른 결인데, 정반대의 형태를 띤다고 지적한다. 어조가 문제가 아니라 '말의 밀도'와 '주장의 구조'가 답답하다는 평가다. 많이 말한다. 계속 말한다. 그런데 그 말들이 쌓여도 결국 '이게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이걸 어떻게 이루겠다는 건지' 알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당위만 반복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는 의견인 것으로 보인다.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가치 판단은 들리는데, 그 '마땅함'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자리를 잡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말이 공중에 떠 있고, 지탱할 토대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글쓴이 자신도 이 함정을 자각하고 있다는 대목인 것으로 보인다. '나도 당위만 반복한다'는 고백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렇기에 오히려 자신의 자리에서 '그 당위를 어떻게 작더라도 구현할 수 있을까'를 계속 묻는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즉, 비판자가 스스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핑계로 삼지 않고 오히려 매일의 선택과 행동 속에서 그 당위를 검증해보려는 태도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게 단순 혐오글과 이 글을 구별하는 지점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치 언어가 신뢰를 얻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글쓴이의 말을 빌리면,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간추려진 당위'와 '모두가 느낄 수 있는 행동'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강한 어조든 조용한 목소리든, 당위만의 반복이든 구체적 제안이든, 결국 그 말이 '실행 가능한 언어'로 검증받을 때 정치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의견으로 읽힌다.


📌 원문 발췌

강한 주장은 강한 주장일 뿐, 그 말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지는 못한다 생각합니다. 강하게 주장하려면, 강한 근거를 밑에 깔아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