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가 들킨 순간, 남편은 집을 떠나버렸다. 이별을 선택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마저 생겼을 법하다. 그러나 약 일주일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옆에는 내연녀가 있었다. 글쓴이의 혼란은 이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남편이 가져온 제안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자신도 아내도 모두 포기할 수 없다며 '셋이 함께 살자'는 것이었다. 마치 외도는 해결해야 할 잘못이 아닌, 그저 새로운 생활 방식의 도입인 양 접근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의 논리에는 자신의 욕심을 정당화하려는 부분이 선명해 보인다. 둘을 모두 원한다는 욕심을 마치 피할 수 없는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인 양 표현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더욱 주목할 점은 남편이 내연녀와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의했는가 하는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당신보다 어리니 여동생처럼 생각해 달라"는 발언이 그것으로 보인다. 가족의 범주 안에서 이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일종의 프레이밍인 것으로 보인다. 아내의 저항을 미리 예상하고, 그 저항을 '좁은 마음'이나 '형제애의 부재'로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거부 자체를 도덕적 결함으로 만드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시어머니의 개입은 이 구도를 완성시킨다. 시어머니는 같이 살라고 권했을 뿐 아니라, "가족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라"며 상황을 적극적으로 정상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가해 측 가족이 피해 입은 아내를 압박하는 2차 가해의 형태로 읽혀진다.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새로운 관계 구도를 '당연한 현실'로 선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내는 이제 남편뿐 아니라 시댁 전체로부터 '수용'을 강요받는 위치에 놓인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마치 짜맞춘 듯 각자 역할을 한다. 남편은 자신의 욕심을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감정으로 포장하고, 시어머니는 그것을 가족 질서의 확장으로 미화한다. 둘 다 글쓴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대해 도덕적 무언가를 요구하는 구조인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실은 협상이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거부할 수 있는 진정한 선택지가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만 남겨진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외도 이후 피해자가 받아야 할 것은 진정한 사과와 책임이어야 한다. 그런데 전개 방향이 정반대다. 오히려 피해자가 새로운 관계 구도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책임을 외도 당사자가 지는 대신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구조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현재 아이가 없는 상태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은 향후 선택지의 자유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책임의 무게가 덜하다는 이유로 남편과 시댁이 더욱 쉽게 자신의 의견을 무시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들이 오히려 문제를 지속·확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 피해자는 매우 고립된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남편이 최근에 저한테 외도를 들키고 집을 나갔습니다. 한 일주일 지났을 때 남편이 내연녀를 같이 데리고 왔어요. 남편이 하는 말이 당신도 내연녀도 포기 못하겠다 우리 셋이 같이 살자는 소리를 하더군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