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마을의 입구에 서 있던 오래된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세대를 잇는 만남의 장소였다. 어린 시절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다가 그 그늘에서 몸을 식히던 기억, 오후 시간에 할일을 마친 할배와 할미들이 모여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모습—이 모든 공유의 순간들이 그 나무 아래에서 만들어졌다. 한국 농촌에서 이렇게 마을의 중심에 자리한 큰 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을 넘어 공동체의 상징이며, 때로는 수백 년의 역사를 담은 문화 자산이기도 하다.
몇 년이 지난 후 고향을 찾았을 때, 그 나무는 절반으로 잘려나가 있었다. 길을 넓힌다는 명분 아래,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마을의 오래된 것들은 하나씩 사라진다. 이것은 비단 나무의 훼손을 넘어선다. 그 나무가 있던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의 얼굴, 그들과 나누던 대화, 그것들이 만들어낸 공동의 감각—모든 것이 함께 사라지는 경험이다. 마을 입구에 남겨진 흉터 같은 나무를 보며 처음 느낀 것은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었다.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개발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무력한가.
비슷한 시기에 다른 상실을 경험했다. 한때 같은 편이라고 확신했던 사람들—특정 평론가, 유튜버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같은 진영의 목소리들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2년 전만 해도 함께 응원하던 인물들이 어느 순간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30년을 함께한 친구였다. 한때는 유명 평론가의 책을 사고 강연장을 찾아가던 그 친구가 어느 날부터 그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주거지에서의 세금 문제를 언급하며, 기성 언론의 존재 이유까지 인정하는 말을 꺼냈다. 신뢰했던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여지없이 공격당했다.
도시로 이주한 친구가 변한 걸까, 아니면 내가 변한 걸까. 시대가 빠르게 움직이는 와중에 누군가는 뒤처져 있었던 걸까. 아니면 우리가 처음부터 생각보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 않았던 건 아닐까. 같은 편이라는 믿음의 기초가 얼마나 약했는지 깨닫는 순간,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흔들린다. 이것은 특정 정당이나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사람을 신뢰했다가 그 신뢰가 흔들렸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다만 시대가 빨라질수록, 세상이 더 복잡해질수록 이런 균열은 더 빈번하고 더 깊어진다.
결국 연락을 끊기로 했다. 다시 만나 대화하자니 말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고, 또 그것들이 모두 무의미해 보였다. 마을 입구의 나무가 절반으로 잘려나간 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친구와의 관계도 온전하지는 않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은 채 어딘가에 남아 있다. 공동체의 그늘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만큼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 시간이 흘러도, 세상이 많이 변해도, 우리가 함께했던 시절은 그대로 남는다. 다만 지금은 그것이 과거형일 뿐이다.
📌 원문 발췌
길을 넓힌다고 사장나무 절반을 잘라버리고 흉하게 변해버린 사장나무를 보고 다시는 고향에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변한 건지 아니면 그 친구가 변한 건지,, 요즘은 연락 안하고 삽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