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지내온 친구가 첫 아이를 앞두고 육아용품이 많이 필요해지자, 저자는 자신의 아이들이 썼던 용품들을 제안했다. 분유제조기, 분유포트, 유모차 라이너, 젖병 소독기, 바운서, 역류방지 쿠션 등 상태 좋은 물건들이었다. 육아용품은 사용 기간이 짧아 중고 가치는 빠르게 떨어지지만 구입할 때는 상당한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저자는 18개월 동안 좁은 집에 이 물건들을 보관하다가, 친구가 고마워하자 당당히 짐을 넘겨줬다.
식사 약속 장소도 저자의 집 근처로 정해졌다. 친구가 차가 없어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첫째 어린이집 등원 후 둘째를 아기띠에 안고, 유모차 짐칸에 물건들을 듬뿍 싣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저자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선의로 보였다. 친구를 위해 짐을 보관하고 들고 가는 과정 자체가 수고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사 후 계산대 앞에서 일이 꼬였다. 친구가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4만 2천 원이 나왔으니까 2만 1천 원씩 입금해 줘." 정확히 반으로 나눠달라는 요청이었다. 저자는 순간 뜻밖이었다. 굳이 반반 더치페이를 제안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밥 한 끼 정도는 친구가 사주는 것이 일반적인 감사의 표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기대한 것은 돈이 아니었다. 호의를 받은 쪽의 최소한의 성의나 센스였다. 매번 빨라떨어지는 육아용품을 선택하고, 1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좁은 거실에 보관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친구를 만나러 간 일련의 행동에 대해 무언의 인정이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호의를 베푼 것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비용들—공간 점유, 시간 소비, 그리고 무게 있는 물건을 옮기는 몸의 수고—이 모두 계산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 마음을 털어놨다. 남편의 대답은 이랬다. "네가 먼저 주겠다고 했으니까, 거기에 대가를 바라면 안 돼. 혼자 기대했다가 서운해하지 마."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더치페이 문화가 일상화된 세상에서는 '공평한 분할'이 오히려 호의의 맥락을 지우기도 한다. 호의를 베푼 쪽과 받은 쪽이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계산하는 것이다. 친구는 현재 상황의 비용만 봤지만, 저자는 18개월이라는 시간과 공간 사용료를 함께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갈등의 핵심은 누가 옳고 그른가가 아니다. 호의를 베푸는 것과 보답을 기대하는 것, 무상 증여와 암묵적 감사 표현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저자는 앞으로 이 친구에게 물건을 더 이상 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호의가 의무로 오해받고, 배려가 계산이 되는 순간, 관계의 형태가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원문 발췌
여기 4만 2천 원이 나왔으니까 2만 1천 원씩 입금해 줘. 돈 2만 원이 아까워서도 아니고, 대단한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닙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