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보수화했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기존의 진보적 가치관을 버리고 우향우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이를 단순한 세대 특성으로만 봐서는 그 본질을 놓친다. 그 뒤에는 우리 사회가 심화시킨 '능력주의'라는 가치관의 부상이 있다.
이전 세대가 공동체의 연대와 약자 보호에 열광했다면, 현재의 청년들은 개인의 능력을 키우고 경쟁에서 앞서가는 것에 열광한다. 스스로를 계발하는 것이 정당하고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다. 이런 능력주의 세계관이 청년층의 정치적·사회적 성향까지 재편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능력주의의 가장 중요한 전제가 깨져 있다. 능력주의는 '동등한 출발선'을 가정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출발선이 철저히 불평등하다. 부모의 재산, 거주지역, 가정환경, 교육 투자 규모의 차이는 입시부터 취업까지 개인의 노력 여부와 무관하게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명문대 입학, 좋은 일자리 획득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풍족한 출발점'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이 불가시한 불평등을 무시하고 '내가 노력했으니 성공했다. 너희는 노력하지 않았으니 실패했다'는 논리가 만연하면 어떻게 될까. 계급 격차가 정당화된다. 개인의 성취를 전적으로 능력에만 귀속시키면, 사회구조적 문제는 각자의 책임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청년층의 극단화를 부추기는 악순환이다.
청년들이 이렇게 된 것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다. 기성세대는 자녀들에게 '너는 얼마나 뛰어난가'를 중심으로 교육했고, 사회 구조는 극심한 경쟁을 압박했다. 취업난, 자산 격차, 저성장이라는 환경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더 강해지는 것'이라고 강박했다.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두려움이 청년을 능력주의자로 만드는 과정이 일어난 것이다.
필요한 것은 청년의 이기성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출발선을 가깝게 하는 교육 정책, 자산 격차를 완화하는 경제 구조, 무한 경쟁 대신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이 있어야 한다. 극단화를 막는 길은 도덕적 호소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 속에만 있다.
📌 원문 발췌
이전 세대는 공동체의 연대와 약자를 위한 희생에 열광했다면, 지금은 개인의 능력치를 키워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높이는 것에 대하여 열광하는 것 같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