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1년 가까이 머물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도 함께 목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1년에 150회 이상 폭탄 테러가 자행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폭탄 테러를 마치 자동차 사고처럼 인식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나온 직후 폭탄이 터지는 경험을 했던 나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러한 테러를 자행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폭탄은 사실 조악하기 그지없다. 물론 살상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자 지구에서 만들어서 밤새 걸어서 예루살렘의 카페나 상점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전 세계 언론에서 이슈로 다루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테러로 인해 사람들을 죽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었지만, 세계 언론들이 주목하게 하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결국 자살 테러라는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사실 그들의 이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을 다른 이들은 몰라도 우리가 외면하면 안 된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의 궁극적 목적 또한 어쩌면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활동가들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들의 신념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행동하는 양심, 혹은 인간으로서 약자를 외면하는 강대국들에게 한 개인의 이러한 행동은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서 한국의 위상을 돌아보자. 어찌 보면 이 모든 것이 귀결되었을 때 팔레스타인을 외면하지 않았던 이들 중에 한국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국제적·정치적으로 귀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현재 상황에서 이 활동가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할 수도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사회적 논쟁을 일으킨 이들이 꼭 팔레스타인에 가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강연이나 모금행사 등을 통해 이러한 생각에 동참하는 이들과 함께 새로운 여론을 형성해나가는 길을 모색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꼭 팔레스타인에 가야만이 그들의 신념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죽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 행동처럼 보이는 무모함에 대해서는 국가가 일정 부분 제제를 하는 것 또한 국가의 책무이다.


📌 원문 발췌

이스라엘에서 1년 가까이 머물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도 함께 목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1년에 150회 이상 폭탄 테라가 자행되어지는 이스라엘사람들은 폭탄 테러를 마치 자동차 사고 처럼 인식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나온 직후 폭탄이 터지는 경험을 했던 나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러한 테러를 자행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했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폭탄은 사실 조악하기 그지 없다. 물론 살상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가자 지구에서 만들어서 밤새 걸어서 예루살렘 카페나 상점에서 폭탄을 터트리는 행위의 궁극적인 목정은 전세계 언론에서 이슈로 다루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목적이었다. 테러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는것또한 중요한 일이었지만 세계 언론들이 주목하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던 것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